몇 년 전 홍알이가 비포 미드나잇이 좋았다며 한 번 보라 한 적이 있는데, 뭐가 좋았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학생 시절 그의 안목은 늘 흥미로운 데가 있었기 때문에, 이젠 비록 나이들어 평범한 아저씨가 되었어도, 오래 알았던 옛 기억은 여전히 후광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작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 갑자기 보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1995년작이니 25년 전 작품이다. 두 사람의 긴 대화를 카메라 전환 없이 쭉 잡아주는 게 너무 좋았다. 옛날 영화들이 대체로 그랬는지 이 영화가 특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대화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열린 대화가 좋았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밝히는 대화가 좋았다. 레코드를 들으러 감상실에 들어간 장면은 너무나 흐뭇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 2초만 견뎠으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키스할 상황이었지만 어쩜 서로 번갈아가며 눈길을 주고 받는 것이 너무나 은근해서, 감독이 대체 디렉팅을 어떻게 줬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의 기차역. 헤어짐이다. 여기가 분명 마지막이다. 두 사람이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걸 보니 보는 사람도 덩달아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여기서 전화번호나 주소를 교환하면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린다. 쿨병에 걸린 우리들은 여기서 돌아서야하는데 그만 반년 뒤의 만남을 약속하고 말았다. 그들이 헤어지고 나니 남은 6개월이 얼마나 즐겁게 기다려질까 생각하다가도, 순식간에 전날밤의 흥분이 가라앉고 그 기억을 그저 아름다운 추억의 전당으로 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열린 결말의 근사한 영화다. 속편도 무려 9년이나 뒤에 나왔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25년 뒤에 보았고 그들은 6개월 뒤에 만날 수 없으며, 두 사람이 각각 차 안에서 상대를 생각하며 미소짓는 마지막 장면은 오직 냉소만을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