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고 있을 때 내가 느끼는 것은 그저 책임감 뿐인 것 같아. 나는 과연 이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 의문이 들어. 이 아이는 내게 받아야하는 게 있고 난 그걸 제공해야만 해.
한참 고민이 많을 때 친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다. 실로 그랬다. 사랑이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귀여울 때도 있지만 그건 그냥 귀엽기 때문이다. 내 아이여서가 아니다. 그는 빚쟁이고 나는 그가 죽지 않고 건강한 인격체가 될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할 채무자였다. 빚은 착실히 갚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 종종 생각했다. 부모의 사랑도 채무에 포함된다. 아이가 언젠가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했다.
몇 년 전에 컨택트라는 영화를 봤다. 에이미 아담스과 제레미 레너가 주인공으로 나와 외계인을 만나는 영화인데, 에이미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고 미래를 알게 된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는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딸이 '아빠가 날 보는 눈빛이 전과 달라졌어'라고 말하는 장면만은 생생하다. 그 의미가 드러났을 때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제레미가 에이미에게 화를 낸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서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다투는 장면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이렇게 될 걸 당신은 알고 있었어 어떻게 나와 아이에게 이럴 수 있어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도종환의 암병동이란 시를 보면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이어라'라는 문구가 있다. 딸에겐 희망이 없다.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아내를 원망한다. 이해할 수 없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계속 됐다. 에이미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 아니다. 현재에 있지만 이미 미래를 살았다. 미래를 이미 살아낸 에이미는 현재를, 미래의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여기서 제레미를 내칠 수도 있고, 단지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 불행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통째로 지워낼 수 있었지만 에이미는 선택을 했다. 어떤 불행이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한 삶은 진짜다. 돌이켜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미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고 그 운명을 이미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낼 것이다. 그래 나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구나. 더 사랑해야겠구나. 그때 깨달았다.
'100일 프로젝트 시즌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려야한다 (0) | 2019.04.18 |
---|---|
엔드게임 (0) | 2019.04.17 |
아이패드 독 스피커 (0) | 2019.04.15 |
곳곳에 숨어있는 (0) | 2019.04.14 |
하야꾸 (2) | 2019.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