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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프로젝트 시즌5

버려야한다

버리기가 쉽지 않다. 기타를 처음 배운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노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에게 슬쩍슬쩍 배웠다. 동아리 연습에 필요할 때나 가끔씩 꽂혀있을 때 바짝 연습하기도 했지만 꾸준함이 부족해 연습한 노래 몇곡을 간신히 칠 수 있는 수준에 그쳤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그 텀은 더욱 길어져 더이상 취미 생활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전에 취업한 대학 친구가 (1학년 때 날 가르친 바로 그 친구) 자취방을 떠나기 전에 날 불렀다. 비싸게 주고 산건 아니지만 생각있으면 가져가라며 기타를 하나 보여줬다.

 

어쿠스틱 기타만 쳐오다가 갑자기 일렉 기타를 보게 되니 가슴도 설레고, 마침 전이현씨도 갓난아이 시절이라 아주 좋은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망 선고 직전이었던 이 취미 생활에 시도된 마지막 심폐소생술이 아니었나 싶다. 한동안은 신나라 연습도 하고 했지만 결국 시들해져 그만둔 것을 보면 사실은 기타 연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후로 3~4년이 지났다. '상실의 시대'를 보면 와타나베와 레이코가 죽은 나오코를 기리면서 밤새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곤 섹스를 하지. 대체 왜. 어떤 감정을 악기 연주로 승화시키는 그 무언가를 늘 동경해왔는데, 보내줘야 하는 걸까.

 

꺼내서 보고 있자니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미안합니다. 마리에상. 다음에 버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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