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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프로젝트 시즌5

주말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또 다시 헛된 다짐이 시작된다. 이번 주말엔 이걸 해야지 이 책을 읽고 이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동영상도 봐야지. 기술 블로그에 글도 써야지. 마치 주중에는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한 양 주말에 모든 것을 건다. 별 성과없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면 자괴감이 몰려오지만, 일주일 열심히 일하고 금요일이 되면 또 다 잊혀지는지, 이번 주말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 만으로 다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 주말엔 대학 동창의 집들이가 있다. 대학 시절에는 죽고 못살았던 그룹이었지만 졸업 후 뿔뿔이 흩어진지 10년이 지났다. 오랜만에 만나볼 생각에 즐겁기도 하지만 사실 톡으로 대화해보면 흐름이 뚝뚝 끊기는 것이 템포가 아주 엉망이다. 호스트는 용감하게도 가족 동반 모임을 제안했고, 참석자 명단을 보니 20명도 넘을 기세다. 그 중에 반은 애들이다. 아랫집에 내일 모임을 미리 얘기하고 양해까지 구해놨다고 한다. 옛날 얘기 아니면 육아 얘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테고, 아직 결혼 하지 않은 친구 한명은 술상대가 마땅치 않아 갈팡질팡할 것이다. 수년 전에 한번 남자애들 모임에서 냉정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물리적으로 멀어짐과 동시에 우리 관계도 이렇게나 멀어진 걸 보니, 대학 때 그렇게 죽고 못 살았던 것도 그저 하루 종일 같이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인 것 아니냐. 서로 안맞았으면 그 정도도 불가능했겠지만, 당시 우리 기분만큼 베프의 궁합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젠 다 같이 늙어버렸고 다시 시작해야겠으니 이제부턴 6개월 이내의 일들만 대화 소재에 올려라. 그리고 우린 한참동안 정치 이야기를 했고 난 결국 그 사태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주말이 주는 기대감과 그것이 부서져가는 과정을 쓰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말았다. 첫 문단을 지우고 글 제목을 '집들이'로 바꾸면 된다. 한심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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